‘꼬꼬무’ 경서중 버스 참사, 56년 만에 드러난 반전 #꼬리에꼬리를무는그날이야기 #꼬꼬무 #악몽의수학여행 #경서중버스참사 #수학여행 #과밀버스
전신화상 생존자 재회와 “선생님 명예 회복돼야” 증언으로 왜곡된 경서중 버스 참사 기록을 바로잡다. (사진=SBS)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가 지난 1일 방송에서 ‘악몽의 수학여행’ 편을 통해 1970년 서울 마포 경서중학교 수학여행 버스 참사의 전말과, 56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드러난 진실을 따라가며 해방 이후 최악의 버스 참사로 기록된 그날을 되짚었다. 당시 현장에서 벌어진 과밀 탑승과 무방비 건널목의 위험, 그리고 교사들에게 씌워졌던 억울한 누명을 함께 짚으면서 비극의 이면을 차분히 드러냈다.
그러던 1970년 10월, 서울 마포의 경서중학교 3학년 학생 470여 명과 교사 11명이 충남 아산 현충사로 당일치기 수학여행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9개 반 학생이 버스 7대에 나눠 타는 과정에서, 정원 39명인 버스 한 대에 70명 이상이 빽빽하게 들어차는 과밀 상태가 일상처럼 이어졌고, 특히 3~4반 학생들이 탄 3호차에는 무려 77명이 빈틈 없이 올라타 숨 쉴 틈조차 부족한 채 긴 이동을 감내해야 했다.
일정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던 오후 4시 무렵, 천안 방향 도로를 따라 달리던 3호차 버스는 철길 건널목 앞에 이르렀다. 그 시점에 경보기 소리가 울리며 경고를 보내고 있었음에도, 운전기사는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지 않고 엑셀을 다시 밟아 통과를 시도했고, 이 무리한 판단으로 인해 철로를 달려오던 기차와 그대로 충돌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열차는 버스를 약 80m가량 밀고 나가면서서야 멈춰 섰고, 그 사이 버스 앞쪽 엔진과 연료통이 폭발해 순식간에 불길이 차 안 전체를 집어삼켰다.
불길이 거세게 치솟는 가운데 구조 작업은 처음부터 벽에 부딪혔다. 충돌과 폭발 충격으로 버스 차체는 심하게 찌그러져 틈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고, 창문에는 보호 창살이 가로질러 박혀 있어 탈출구가 막힌 채 학생들이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인근 주민들과 뒤따르던 다른 차량의 학생들이 다급히 달려와 돌로 유리창을 깨며 손을 내밀었지만, 짙은 연기와 타오르는 불길이 안쪽을 가리면서 구조 시도는 연달아 가로막혔고, 그 사이 많은 아이들이 안에서 미처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 사고로 현장에서만 부상자 32명이 쓰러지고 사망자가 버스 기사를 포함해 46명까지 늘어나, 해방 이후 가장 참혹한 버스 참사로 기록될 만큼 큰 피해가 남았다.
당시 상황을 지켜보는 리스너들의 반응도 무거웠다. 원어스 건희는 학생들로 가득 찬 버스가 불길에 휩싸이는 장면을 떠올리며 “나라면 패닉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고, 화면 속 장면을 바라보던 정이랑은 아이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를 낳고 보니까 사고가 남일 같지 않다”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볼빨간사춘기 안지영 역시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을 생각하며 “참혹하다”고 털어놓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갔다가 너무 괴롭고 잊고 싶은 기억이 됐다”며 피해 학생들과 유가족의 마음을 상상하는 듯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참사의 배경에는 버스 한 대에 정원의 두 배 가까운 인원을 태운 과밀 운행뿐 아니라, 철길 건널목 자체가 안고 있던 구조적인 위험도 자리하고 있었다. 사고가 난 구간은 하루 통행량이 5천 대에 이르렀지만 차단기나 관리원 한 명조차 배치되지 않은 3종 건널목으로 방치돼 있었고, 시야를 가리는 정미소까지 철길 인근에 그대로 세워져 있어 approaching 열차를 미리 발견하기 어려운 환경이 이어졌다. 당시 철도청은 이 위험을 알고서도 건설부와의 협의 미비를 이유로 정미소를 이전하지 않았고,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건널목 등급을 올리는 조치도 미뤄왔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행정기관의 안일함이 참사를 키웠다는 지적이 뒤늦게 재조명됐다.
여기에 더해 사고 직후에는 현장의 진실과 다른 내용이 기사로 전해지며, 선생님들에게까지 비난의 시선이 쏟아지는 2차 상처가 이어졌다. 당시 언론 보도에는 인솔 교사들이 학생들을 방치한 채 버스에 타지 않았거나 사고 후 도망쳤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이후 생존 학생들은 카메라 앞에서 “선생님들의 명예가 회복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면서 그 보도가 사실이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인솔 교사들이 버스에 타지 못했던 이유가, 지각한 학생을 찾으러 간 사이 3호차 버스가 임의로 무단 출발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이번 꼬꼬무 취재 과정에서 56년 만에 구체적으로 확인되며, 그동안 왜곡돼 있던 교사 책임 논란의 방향이 크게 뒤집혔다.
사고 다음 날 새벽, 경서중학교에는 급히 임시 안치소가 마련돼 유족들이 학교로 모여들었지만, 버스 안에서 불길과 충격을 견뎌야 했던 희생자들의 시신은 훼손이 심해 부모조차 자식을 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이어졌다. 이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직원이 현장으로 파견돼 치아 감식을 진행했고, 긴 식별 작업 끝에 사망자 45명의 신원을 모두 확인해 각자의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한 학생이 끝내 숨을 거두면서 학생 사망자는 최종 46명으로 늘어났고, 합동 장례식 현장 사진을 마주한 정이랑은 말문이 막힌 채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라고 짧게 전하며, 화면 속 줄지어 놓인 영정을 바라보다 고개를 떨궜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학교와 동창들은 희생자들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이듬해 발간된 졸업 앨범에는 사고로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의 얼굴 아래 ‘사라진 별들’이라는 문구가 실려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전했고,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고 트라우마 때문에 오랫동안 연락을 끊었던 한 학생은 이번 방송을 계기로 56년 만에 동창들과 다시 만나 기적 같은 재회를 이루게 됐다. 생존 학생들은 매년 10월 묘역을 찾아가 세상을 떠난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추모를 이어가고 있었고, 서로의 손을 잡고 따뜻한 우정을 나누면서 긴 세월 쌓인 아픔을 조금씩 채워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장현성, 장성규, 장도연은 경서중학교 버스 참사가 한 번의 사건으로 잊히기보다, 이후 안전을 점검하는 경각심으로 남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 사람은 #방송 말미에서 “이 참사 이후로도 대형 참사들을 겪었다”며, 어른들의 잘못과 무책임이 반복되면서 희생의 대가를 아이들이 치러온 역사를 언급했고,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희생되는 비극이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이날 ‘악몽의 수학여행’ 편에는 방송인 정이랑과 그룹 원어스 건희, 볼빨간사춘기 안지영이 리스너로 참여해 이야기를 들으며 수차례 눈시울을 붉혔다. 세 사람은 참사 당시 버스 안에 타고 있었을 아이들의 감정과, 사고 이후 삶이 달라져 버린 생존자들의 무게를 함께 떠올리며 화면 앞에서 폭풍처럼 눈물을 쏟았고, “참혹하고 마음 아프다”, “경각심을 가지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말로 감정을 정리하려 했다. 시청자들도 방송 직후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조금 전까지 함께 웃던 친구를 한순간에 잃는 슬픔은 상상도 못 하겠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의무를 저버린 것이 더 큰 참사를 만든 것 같다”, “꼬꼬무를 보지 않았다면 이 사건을 영영 몰랐을 것”이라며, 뒤늦게나마 사건을 알게 된 소감과 선생님들의 명예가 회복된 데 대한 안도감을 함께 남겼다.
닐슨코리아 집계 결과, 이번 방송은 수도권과 전국 시청률 3.0%를 기록해 교양·예능 프로그램을 통틀어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며,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경서중 버스 참사 재조명이 시청자에게 강한 반향을 일으켰던 것으로 나타났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악몽의 수학여행’편은 지난 1일 목요일 밤 10시 20분에 방송됐다.